갑자기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특별히 어떤 이유 때문이었던건 아니지만
어쩜 망설임이 파도치는
바다 위 열병에 걸린 듯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당신께 펜을 들고 맙니다
잘 지내시죠? 참 힘들었던 지난 시절
전 무척 어렸고 집안 상황에 지쳐
가끔은 서럽고 당신이 원망스러웠죠
이젠 하나씩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죠
기억할 수 없는 건,
당신이 쏟아주었던 관심의 크기
그 멀어진 시간의 골짜기를
쉽게 메꾸긴 힘들겠죠
그래도 응답해주길
부정할 수 없는 건,
당신을 만나러 가는 꿈의 되풀이
그래요 갑작스레 펜을 든 건 거짓말
아버지의 스무살 일기장을 발견했죠
스무살의 아버지는 불안함으로
달궈진 유리병안의 물
잔뜩 끓어오른 젊음
순식간에 자신을
태워버릴 열정으로 가득차
성공한 모습을 기대하며 잠못자
그토록 스스로에게 강요하시던 끈기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가슴에 숨길 수 없어
길게 타오르던 그 젊은 날의 불길
그런 아버지에게
신앙이란 여린 생명의 빛줄기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때 이후로 왜 홀로 슬퍼졌는지
곤히 자고있던 가족들을
몰래 곁눈질하며
거듭 마음을 숨겼는지
거역할 수 없는 건,
그 먼 길을 헤매오던 당신의 젊음이
되돌아갈 반환점을 찾기 전까진
헤매던 길로 계속 달릴 수밖에 없더라고
오래 기다렸던 날들,
조금씩 좁아지는 하늘
녹슨 기억 한가운데,
사진 속 그대는 아름다운데
삶은 매듭짓지 못한
과정 투성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면 좀
더 빨리 무뎌져가는
법도 배웠을텐데,
좀 더 슬퍼져가는 날들이
눈 앞에서 조금씩 흩어져가는군요
한 여자와는 평생 함께 하길 원했었고
그 행복은 내 손에
무너질 모래성이었죠
허나 그것도 역시
무척 오래전 얘기라
이런 과걸 되돌리는 것이 놀랍죠
아버지, 바다 이쪽 편에
오래토록 남겨진
아버지의 일기장을
난 며칠 동안 씨름하듯 읽었죠.
지금 나는 기억도 나지를 않는
기억 속 저편의 얘기들이었죠
내 눈 앞을 아른거리는
꿈을 잡아보자 생각했던 난
노래했던 스물하나보다
조금 더 독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쉰 해는 또 어떻게 지나가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