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김순자는 올해 일흔셋이다.
주책맞게도 쉬흔 가까운 나이에 할마씨가 나를 가졌을 때,
둘째 조카를 임신하여
모녀가 같이 남산만한 배를 하고 다녔던 큰 누부(누나),
그 여자가 김순자이다.
어릴 적 똑 같은 나이의 친구가 날보고
‘아지야, 아지야’하고 불렀으니 먼 친척 같으면 몰라도 직계 외삼촌인지라
부르는 조카나 듣는 삼촌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넘사스럽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다.
나이로 따져도 스무네살이나 차이가 나니 내겐 엄마 같은 누부였다.
할마씨가 돌아가셨을 때 나를 부퉁 켜 안고는
‘니를 우야꼬, 니를 우야꼬……’
하면서 철철 흘렸던 눈물은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여자 김순자 아래로는 거칠기 짝이 없는 남동생이 다섯이나 딸려 있었다.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증명하지 않되었던 마냥
온갖 집안일과 동생들 뒤치다꺼리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배가 고파 부엌에서 무엇이라도 하나 몰래 먹을라치면
어머니는 큰 아들 줄 것을 훔쳐 먹었다고 혼쭐을 내었다.
먹을 것의 우선 순위는 항상 맏아들에게 있었고,
빚을 내어서라도 아들은 학교에 보내도
맏딸은 그럴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여자가 무슨 …….
스무살이 채 넘기도 전에 시집을 갔다.
시부모가 시퍼렇게 살아있고,
특별한 직업도 없이 술 좋아하는 남편과 결혼하여
두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그녀는 머리에 반팅이를 이고 양말에 구멍이 나도록 돌아다니면서
소금장사를 했고, 시장통에 좌판을 깔고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누부가 장사하고 돌아오면, 자형은 손을 벌려 몇 백원을 얻어가지고는
부근 가게에서 막걸리를 사먹었다. 코가 빨개지도록……
그렇게 모진 세월을 살면서 그래도 아들들은 대학에 보냈다.
자형이 돌아 가셨을 때, 우는 자식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덤덤하게 자신의 아버지를 보냈다.
오직 한 사람 누부만은 땅을 파는 묘소자리 앞에서 대성 통곡을 하였다.
‘이 인간아, 이래 가마 나는 우예살라꼬, 우예 살라꼬……’
자식들은 이런 엄마를 보고 그제야 눈물을 훔쳤다.
어쩌다 누부집에 한번 가면, 눈물부터 훌쩍이면서
‘한끼를 묵어도 절대로 밀가루 음식 묵지마래이……
내가 보태주 것도 읎고 ……
우야겠노 ……‘
하면서도 되돌아 올 때는 있는 돈 다 털어서 손에 꼭 쥐어 주었다.
그 여자 김순자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암세포가 다 퍼져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며 의사는
몇 개월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선고한 것이다.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싶어 누부 얼굴을 보러 내려갔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 채, 한 줌이나 되는 약을 먹고 채식을 하면서
고통을 다스리고 있었다.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고, 운동도 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온 그 모습 그대로
삶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잔인하게도 나는 조카에게 누부에게 사실대로 말할 것을 권고했다.
더 늦기 전에, 그 모진 세월을 스스로 돌아보고,
정리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이제 언제 볼지 모르는 누부에게
‘건강 잘 챙기소, 마. 요새는 여든, 아흔도 거뜬한 세상이구마……’
허튼 소리밖에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누부는 또 꼬깃꼬깃 챙겨 놓은 돈을 손에 쥐어주며
‘우째덩가 니가 잘되야 된데이……’한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집을 나서야 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신 누부지만 언제나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