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래향 夜來香

심규선 (Lucia)

눈이 나려 나를 덮으면 그 밤에는 오시려나
마른 가지 희스무레하게 꽃눈이 맺혀오면
저문 유월 임의 품에서 이향異香에 취했거늘
된 비 세차게 내리고 씻겨도 차마
떨치지 못하노라

아니 오실 임을 애써 기다려 무엇 하랴
밑가지 채 꺾어 버려도
향기가 먼저 마중 가는데
아니 오실 임을 자꾸 새겨서 무엇 할까
이 생에 살아서 못 만난 들 어떠리

달 비치던 푸른 강가엔 쐐기풀이 웃자라고
구름 뒤에 어슴푸레하게 숨은 내 임의 얼굴이
님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꺾고 채이고 밟히고 짓이겨져도
또 피우고 마노라

오라, 아득히 멀리 멎어버린 임의 향기여
부옇게 번지는 꽃무더기 헤치며 울어보노라
가라, 내게서 짙게 배어버린 임의 온기여
떠나시던 임의 옷깃에 엉겨 매달려 볼 것을

아니 오실 임을 애써 기다려 무엇 하랴
밑가지 채 꺾어 버려도
향기가 먼저 마중 가는데
아니 오실 임을 자꾸 새겨서 무엇 할까
이 생에 살아서 못 만난 들 어떠리

지난날의 약속들을 의심치 않고저
내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니
함께 부른 사랑 노래 잊지는 말고저
모두 잃고 하나 얻은 것이니

아니 오실 임을 애써 기다려 무엇 하랴
밑가지 채 꺾어 버려도
향기가 먼저 마중 가는데
아니 오실 임을 자꾸 새겨서 무엇 할까
이 생에 살아서 못 만난 들 어떠리
이 생에 살아서 못 만난 들
사랑했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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