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풍경이 아름다운 왕국이 있었어요.
왕국을 통치하고 있는 지혜로운 왕에겐
어여쁜 딸이 있었습니다. 공주는 참으로 아름다워서
모든 사람들은 공주를 볼 때면
태양보다 눈이 부실 정도라고 말하곤 했어요.
사람들은 늘 공주의 미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왕은
공주가 아름다운 미모 때문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원했습니다. 왕의 바람과는 달리 공주는
다소 제멋대로인 성격을 갖고 있었답니다.
왜냐하면 공주는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에 익숙했고 가지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공주는
아름다운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갖고 싶어 했답니다.
그런 공주가 어려서부터 모아온 물건들 중에서
가장 아끼던 물건은 황금 공이었습니다.
황금 공은 반짝거리는 금으로 만들어졌지만
무겁지도 않았고 통통거리며 잘 튀었어요.
공주는 매일매일 황금 공을 들고 다니며 놀았습니다.
황금 공을 벽에 던질 때마다 반대쪽으로 튀어 다녔고
황금 공을 아래로 굴리면 황금 공은 바닥에서
환하게 반짝거리며 또르르 굴러다녔어요.
공주가 갖고 있는 장난감들 중에서 황금 공은
가장 아름답고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날이었어요.
공주는 그날도 어김없이 황금 공을 갖고 놀았습니다.
날이 더웠던 공주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대는
숲속에 가서 놀기로 했어요. 공주는 황금 공을 들고
울창한 숲으로 향했습니다. 숲으로 들어가자
시원한 바람이 공주를 맞아주었어요.
공주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조금씩 식어갔습니다.
공주는 시원한 바람을 맞아가며
황금 공을 튕겨댔어요. 황금 공이 나무들 사이로
부딪힐 때마다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공주는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 사이로
반짝이는 황금 공이 너무 아름다워 기분이 좋아졌어요.
공주가 이번엔 바닥으로 황금 공을 튕겼습니다.
황금 공이 바닥에서 튀어 오르더니
커다란 바위 쪽으로 향했습니다. 바위에 부딪힌
황금 공은 바위 옆에 있는 커다란 연못으로
빠져 버리고 말았어요. 공주가 깜짝 놀라
황급히 연못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황금 공은
이미 연못 안으로 빠진 후였어요. 공주가
황금 공을 찾기 위해 연못 속으로 팔을 뻗었어요.
옷이 다 젖는 줄도 모르고 깊숙이 팔을 뻗어
휘저어봤지만 황금 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반짝반짝 아름다운 황금 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공주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공주는 연못 앞에 주저앉아 너무나 서러워서
온 숲이 떠날 정도로 큰 소리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어요. 연못 쪽에서 누군가 공주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공주님, 왜 그렇게 슬프게 울고 계신가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공주는 눈물을 훔치곤 연못 주변을 살펴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공주가 자신을 찾지 못하자
다시 한번 공주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공주님, 여기예요. 아래쪽이에요"
공주가 고개를 내려 아래를 내려다보자 연못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연못에 살고 있던 개구리가 큰 울음소리에 이끌려
연못 위로 나왔던 것이었어요. 아름다운 공주가
서글프게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공주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공주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었습니다. 개구리는
살이 뒤룩뒤룩 쪄 있고 피부도 울퉁불퉁한 개구리였어요.
심지어 온몸이 촌스러운 초록색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공주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공주는 아름다운 것만 좋아했고
아름답지 않은 것들은 싫어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공주는
연못에서 나타난 개구리가 자신을 도와줄 수도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개구리와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개구리는 연못에 빠진 공주의 황금 공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개구리는 헤엄을 잘 치기 때문에
연못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황금 공을 꺼내 올
자신이 있었습니다. 개구리는 공주에게 황금 공을
찾아주는 대신 소원을 들어달라고 말했어요.
공주는 크게 기뻐하며 개구리에게 무엇이든 말해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습니다. 값진 보석이나 아름다운 옷,
궁궐 같은 집, 어떠한 것이든 아빠에게 말하면
들어줄 테니까요. 황금 공을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개구리에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구리는 공주가 하는 말을 다 듣고는 소원을
이야기했습니다. 개구리에게 보석이나 집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어요. 개구리는 공주와 함께 살며
친구로 지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궁전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며 함께 놀고,
식탁에서 밥도 같이 먹고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자는 그런 친구 말이에요. 공주는
아름다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못생긴 개구리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궁전에서 사람 행세를 하며 아름다운 자신과
친구가 되려는 개구리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개구리는 개구리들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공주는 속마음과 달리 개구리에게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장 아끼는 황금 공을 되찾고 싶었으니까요.
일단은 개구리에게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야
개구리가 황금 공을 찾아줄 것 같았거든요.
개구리는 공주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말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아름다운 공주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개구리는 즉시 연못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머지않아 개구리는 연못 속
깊은 바닥에서 반짝거리는 황금 공을 발견했어요.
개구리가 황금 공을 입에 물고 연못 밖으로 올라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개구리는 수영 실력이
너무 좋아서 물속에서 엄청 빠르게 수영할 수 있었거든요.
개구리가 가져온 황금 공을 보자 공주는 너무 기뻤습니다.
아름다운 황금 공을 다시 갖고 놀 수 있다니!
공주는 개구리에게 황금 공을 건네 달라고 말했습니다.
개구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입에 물고 있는 황금 공을
공주에게 건넸어요. 그 순간 공주는 황금 공을 낚아채고는
즉시 뒤를 돌아서 궁전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못생긴 개구리와 친구가 될
자신이 없었거든요. 개구리는 멀어져 가는 공주를 향해
같이 가자고 소리쳤어요. 개구리는 연못 속에선 빨랐지만
연못 밖에선 수영을 할 수 없잖아요. 폴짝거리며
달려가는 공주를 뒤따라갔지만 공주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개구리는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공주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분명 공주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뒤쫓아갔습니다.
한편, 공주는 뒤돌아보지 않고 쉼 없이 달린 끝에
순식간에 궁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빠르게 뛰어
힘들었던 공주는 금세 잠에 빠졌습니다. 공주는 잠에 들면서도
황금 공을 꼭 끌어안았어요. 다시는 황금 공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에요. 어느새 공주는
개구리에 대한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이 됐어요. 공주가 아빠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앉았습니다.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올라가 있었어요. 왕과 공주가 포크를 집어서
음식을 가져가려는 그때 쿵쿵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왕과 공주가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다시 한번 쿵쿵 소리가 났어요.
공주가 식탁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문 앞에는
숨을 헐떡거리는 개구리가 앉아있었어요!
개구리가 공주를 찾아 밤새 궁전으로 폴짝폴짝
뛰어왔던 것이었어요. 깜짝 놀란 공주가 황급히 문을 닫고는
개구리를 모른 척했습니다. 왕은 당황해하는 공주를 보면서
누가 찾아온 것인지 물었습니다. 공주는 우물쭈물거리며
대답을 피했어요. 그때 다시 개구리가 문을 두들겼습니다.
왕이 공주를 지그시 바라보자 그제서야 공주는 전날 있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왕은
공주를 나무랐어요. 지혜로운 공주가 되길 바랐던 왕은
공주에게 약속을 했으면 꼭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주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개구리를 들어오게 했어요.
개구리는 밤새 뛰어왔던 탓에 배가 몹시도 고팠습니다.
개구리는 공주가 한 약속대로 식탁에서 공주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었어요. 공주에게 식탁 위로 자신을
올려달라고 했지만 공주는 개구리가 너무너무 싫었습니다.
개구리가 궁전 안에 들어와 있는 것도 싫은데
같이 밥을 먹기 위해 식탁 위로 올려주는 것은
더더욱 싫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공주가 개구리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공주는 눈을 질끈 감고
개구리를 식탁 위로 올려주었습니다. 개구리는 공주와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모든 음식들을 맛보고 싶었던 개구리는 공주에게
식탁 위 음식들을 하나씩 건네달라고 했어요.
공주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개구리가 해달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주는 개구리와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이 너무 끔찍했어요.
식사를 마친 개구리는 공주에게 침실로 데려가달라고
말했습니다. 공주는 자신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며놓은
침실에 못생긴 개구리가 들어오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개구리를 억지로라도 다시 연못으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개구리는 공주가 처음부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개구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공주에게 화를 냈습니다.
옆에 있는 왕도 공주에게 말했어요. 힘들 때 도와준 이를
무시하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요. 공주는 어쩔 수 없이
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고 있는 개구리를
두 손가락으로 들어 침실로 향했습니다. 침실에 들어오자
공주는 기분 나쁘다는 듯 개구리를 바닥에 내팽개쳤어요.
개구리는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약속한 대로
차가운 바닥이 아니라 포근한 침대에서
같이 자야 한다고 말이에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왕에게 이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공주는
황금 공을 찾기 위해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한 자신에게
화가 났어요. 그리고 왕에게 이른다고 협박하는 개구리에게도
너무 화가 났습니다. 화를 이기지 못한 공주는 개구리를 들어
벽에 집어던졌습니다. 개구리가 벽에 부딪히자마자 펑 하고
갑자기 하얀 연기가 방안을 뒤덮었습니다. 연기가 가시자
나타난 것은 축축하고 못생긴 개구리가 아니었어요.
그곳엔 아주 잘 생기고 좋은 향기까지 흘러넘치는
멋진 왕자님이었습니다. 개구리는 마녀의 저주를 받아
개구리로 변했던 왕자님이었어요. 강한 충격을 받고는
저주가 풀려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공주는 깜짝 놀랐어요. 자신이 끔찍하게 싫어했던
못생긴 개구리가 사실은 아름다운 왕자였다는 사실 때문에요.
왕자는 저주가 풀린 것이 기뻤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했던 공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공주는 이미 왕자님에게 첫눈에 반해 있었어요.
무엇보다 공주는 개구리 왕자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은 상태였습니다. 외모만 놓고 아름다움을 따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철없는 공주에서 지혜로운 공주로
변한 것을 보고 왕자는 마음을 풀었습니다.
왕자는 아름다운 공주와 여전히 함께하고 싶어 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왕도 크게 기뻐했습니다.
공주가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지혜로움까지 갖추기
시작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은 공주를 변하게
만들어준 왕자와 공주를 결혼시키기로 했습니다.
한편, 개구리 왕자가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커다란 마차가 왕국으로 찾아왔습니다. 그 마차 안에는
왕자님의 충성스러운 하인인 헨리가 타고 있었어요.
헨리는 왕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단 사실에
크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래전 왕자님이
개구리로 변했을 때, 그 사실이 너무 슬픈 나머지
자신의 심장이 부서지지 않게 하려고 강철 띠 세 개로
자신의 가슴을 묶을 만큼 왕자님의 충성스러운 하인이었습니다.
헨리가 드디어 왕자님과 재회했어요. 왕자님의 옆에는
아름다운 공주님이 서 있었고요. 헨리가 왕자님과 공주님을
마차에 모시고 왕자의 나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마차에선 쨍그랑 소리가 세 번 울렸습니다.
왕자와 공주는 마차의 바퀴에 커다란 돌멩이가 부딪힌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실 그 소리는 행복을 되찾은 왕자의 모습이
너무 기쁜 나머지 헨리의 가슴을 묶어 놨던 강철 띠가
하나씩 부서지는 소리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