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머리

심상건

해설: 김해숙(가야금 연주자, 중앙대 강사)
심상건(1889-1965)은 가야금산조의 제2세대(조금 더 세분하면 1.5세대) 명인으로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살았기에 그의 생애는 한국 전통음악의 근, 현대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고 하겠다. 그가 가야금산조를 비롯하여 가야금병창, 시나위합주 등 유성기 음반에 여러 차례 연주녹음을 남긴 일을 생각해 보면 그와 동시대인인 한성기(1896-1950), 김종기(1904-1937), 강태홍(1896-1957)보다 한층 활발한 연주활동을 벌일 수 있었으며, 역사의 격변기에 살았어도 음악적으로는 그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행운을 얻었던 것 같다.
심상건은 원래 충청도 태생이면서도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생성, 전승된 가야금산조에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비결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한편 이러한 명성에 비해서 그의 음악이 현재 거의 계승, 연주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그의 음악세계가 어떠했을까를 살펴보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의문들이다.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바로는 심상건은 즉흥연주의 대가로 손꼽힌다. 음반을 통해 그의 음악세계에 심취했던 어떤 사람이 그의 연주를 듣고는 싱거워서 그냥 돌아가버렸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한데 이러한 그에게도 음악을 가르쳐 준 스승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그의 아버지는 심창래, 또 가야금독주로 음반을 남긴 심정순이 그의 큰 아버지인 것을 보면 그의 가계는 전통음악인 집안이었을게다. 세상에서는 그의 아버지가 그의 스승이라고 하기도 하며 그 자신이 자득했다고 전하기도 하는데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자득했음을 자랑스러이 여길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존하는 여러 유파의 가야금산조 진양조의 선율 틀이 대부분 공통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서 심상건은 기존의 틀과는 다른 진양조를 남기고 있어서 그의 음악이 이미 채보, 연구된 바 있으며, 이러한 연구를 통해 그의 음악세계(산조)의 독자성이 알려진 바 있었다. 본 음반에서는 앞서 채보, 연구되지 않은 다스름, 엇머리, 중머리가 처음 발굴, 수록되어 있어서 “그의  연주의 즉흥성이 어떠한가?”, “그가 가락을 짜나가는 방법이 어떠했나?”하는 의문점들을 살펴 볼 수 있다.
심상건의 다스름은 새롭다고 느껴진다. 마치 말쑥한 새신랑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세상을 탐색하듯 땅줄(7째줄)과 칭줄(11째줄)이 중심이 되어 미음계로 두개의 가락이 교차되는데 상,하청을 자유로이 드나들며 명주실의 여운을 즐기고 있다. 말미에는 레음계의 가락이 이어지면서 즉흥성을 띤 채 연주된다. 두번째로 연주된 곡은 음반에는 언머리로 표기되어 있으나 자진머리이다. 좀 느리게 시작하여 빨라지며 첫박을 딛고 들어가는 리듬짜임이나 두장단 단위로 맺어지는 가락의 짜임에 특징이 있다. 세번째로 연주된 곡은 빠르게 연주한 중머리이다. 고음반의 진양조는 빠른 것(세마치)이 더 많이 나타나는데 심상건의 중모리 장단도 빠른 진양조처럼 현재의 템포 개념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또 자진머리나 중머리에서의 곡상도 애조띤 계면성음 보다는 밝고 발랄한 평조성음이 많다. 심상건은 제3세대 산조 명인들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청(KEY)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 같으며 대신 산조풍의 가락을 나름대로 만들어가며 청중의 요구에 부응했던 것 같다. 그 자신이 전승계보를 쫓거나 제자양성에 담담했던 것에서 그가 시대의 굴레에 매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연주세계에서 자유를 누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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