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앞의 메케한 공기가 두 폐를 가득 채우고 어깨를 부딪히고
가는 사람들의 미로 속. 미아처럼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하늘을 쳐다볼
줄 알았던 소년은 어디로? 그들이 내민 시뻘건 그 원고지를 뒤집어
그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눈꺼풀 뒤에 자리한 그 세계를, 그 악몽을
다 끄집어내 채색을. 남보다 약간 어리숙한 얼굴과 그리고 반쯤 감긴 두
눈으로 커튼 뒤의 요새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젓고 내리깔지,
그게 최선이라면서. 나이를 먹고 소위 '철든다'는 게 싫어 싸웠어. 만약
시간의 문턱을 나 가로질러 그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를 구할 수 있을 텐데.
멍하니 날 쳐다보는 그에게 나 말할래. '자 이제 괜찮아, 너 전부 다 내려놔도 돼.'
괜찮다고 말해줄까. 어떡해야 좀 꺼내줄까. 유리벽 반대편 그의 귀에 내 목소리를 어떡하면 전해줄까.
사실 널 나 그냥 보러 왔어. 넌 아직 슬퍼할 줄 알어. 꿈에서라도 잡어 두게.
모아둔 너의 그 모든 낙서. 내 두 눈 속 깊이 담어. 그 어딘가로 가져갈게.
You'll be alright. 안녕, 오랜만에 보네. 나는 너야, 아니 너였지,
꽤 오래전에. 외할아버지 살아계실 테니 안부 전해. 그리고 보다시피
돼지 될 거야, 미리 미안해. 혼란스럽지? 형이 다 알고 있어. 내 기억에서
역시 너 사는 지금이 힘들고 지쳐 쉬운 방편으로 끝낼 생각 하겠지.
네 가방 안의 필통은 수면제로 꽉 찼겠지. 다 알어. 세상이 엿같이 나와서
상처받기 싫어서 몸에 가시를 박았고. 더 좋아질 게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그 막막함은 잊어. 나를 봐, 난 날고 있잖니? 사실 시간을 거슬러 널 만나러 온건,
널 위해 라기보단 나를 위해서가 더 커. 상처받고 울 수 있을 때 마음껏 울어둬.
나중 가면 익숙해지다 못해 다 무뎌져. 괜찮아. 나는 알아. 세상에 혼자 떨어진
네 외로움을 말야. 그 나약한 네가 지금 와서는 되려 그리워. 네 작은 조각 하나
훔쳐 돌아갈게, 잘 있어.
사실 널 나 그냥 보러 왔어. 넌 아직 슬퍼할 줄 알어. 꿈에서 라도 잡어 두게.
모아둔 너의 그 모든 낙서. 내 두 눈 속 깊이 담어. 그 어딘가로 가져갈게. You'll be al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