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찻잔
차거운 침묵속에
나는 서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막연하게 사랑했던
아름다운 죄하나 때문에
외로운 방황속에
나는 서있습니다
영원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비밀을
가슴 깊숙히 간직한채
어쩌면 이것은 운명인지도
숙명인지도 모르는
내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러나 나는 결코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이 싸늘한 찻잔이 비워지면
당신과 나는 바람처럼 스쳐가는
남남이 되기에 마지막 이 찻잔이
그저 가득차 있기를 바랄뿐
인생이란 영원한 사랑도
영원한 이별도 없듯이
지금 이 시간을 맞기 위해
그 날의 포옹이 그렇게도 뜨거웠다면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날을 잊겠습니다
지금도 저 뮤직박스에선
옛날과 다름없이 음악은 흐르는데
당신과 나는 이 싸늘한 찻잔 앞에서
이토록 방황해야 하는
까닭은 또한 무엇입니까
난 이제 모든 것을 다 체념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나에겐
그 조그만한 하나의 바램마저도
한줄기 바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행복에 겨웁도록
가슴에 와닿던 그 많은 밀어도
이젠 한낱 회한으로 덩어리져 오고
블랙커피의 쓴맛처럼
밖엔 조용히 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 이제 그리움일랑
지난날의 못다한 사연으로 메우고
보고픔일랑 그 많은 추억으로 달래면서
마지막 이 찻잔에 행복을 빕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