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時節因緣)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이 합하여져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 인과 연이 언젠가 합쳐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곁에 와 있고 흩어지면 아무리 붙잡고 빌어도 뒤돌아보지 않고 내게서 떠나간다. 모든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요인들이 맞물려 필연적으로 일어난 결과물이자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도 인연이 왔다 가는 것과 비슷함을 느낀다. 어떠한 계절도 영원히 지속되지도,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순환되는 고리 속에 살아간다. 한 계절이 주는 느낌에 익숙해지려 할 때가 되면 가버리고 잊혀지려 할 때가 되면 돌아온다. 그 계절이 봄이라면, 봄이 주는 따뜻함에 익숙해지려 할 때가 되면 가버리고 한겨울 추위에 지쳐 기억 속에서 잊혀지려 할 때가 되면 새로운 봄으로 돌아온다.
봄이 주는 따뜻함이 좋을 수만은 없다. 꽃샘추위가 오기도 하고 더위가 올 때도 있고 일교차가 커 옷을 챙기는 게 난감할 때도 있다. 그처럼, 내게 오는 인연도 좋을 수만은 없다. 살다보면 반갑지 않은 만남이 있을 수 있고 외면하고 싶은 헤어짐이 있을 수 있다. 할 수 있는 최선은 어떤 만남이든, 헤어짐이든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저마다 기간과 깊이는 다르겠지만 내 삶에 한 부분의 흔적으로 남아 나와 함께해준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것이 아닐까한다.
이제, 정말 봄이 오려나보다. 새로운 봄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정들었고 아쉽지만 떠나기로 한 곳은 봄이 오기 전에 떠나야만 한다. 떠나온 곳에 어떤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지만 새로 시작하는 봄에 대한 설렘과 지난 봄이 안겨주었던 따뜻함에 대한 고마움을 안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봄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