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능선 지나 옛 절터를 찾았더니
현오국사 주석하던 대찰은 간 곳 없고
버려진 묵정밭 위에 마른 억새 울고 있다
질척한 비탈길엔 기왓조각 널려있고
부처와 보살이 앉는 연화좌 서너 개가
불타고 부서진 채로 나뒹굴고 있구나
세속을 멀리하려 이 산중에 터 잡아도
왜란 호란 양 병란에 큰 싸움터가 되어
흘린 피 쌓인 업보를 이 절이 받았구나
고승의 생애 적은 금이 간 비석 하나
부도는 어디 가고 홀로 덜렁 남았는데
그나마 비각을 세워 비바람을 막고 있다
왕족으로 태어나 백고좌회 주관하고
근검 절약하고 선행을 좋아했다는
국사의 생전 행장이 저 돌에 남았으려나
한줄기 찬바람이 용마등 넘어 날아들 제
외로운 비각 앞의 주인 잃은 감나무가
황량한 절터 지키며 옛 영화를 그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