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TV에
나오던 영웅들은
색색의 옷을 입고서
화려한 기술과
끈끈한 팀워크로
적을 물리쳤어
어렸던 마음에 열광하던
아직 자그마하던 한 소년은
조금은 키가 커졌을 때쯤
그게 바보같다 생각해버렸어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건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단 것 같아서
그 손을 잡는 게 두려워서
뿌리치고 도망가 버렸어
화려한 색깔과 겉모습 같은 건
그저 껍데기들일 뿐이라 단정짓고선
어릴 적 동경했던 영웅들을
어느새 유치하다 생각해버리고 말았어
어느 날 우연히
종이 위에서 만난
무채색의 히어로는
고독한 늑대가
외로이 울부짖듯
홀로 고뇌하며
결국엔 단신으로 모든 걸
해치우고 돌아선 뒷모습은
언젠가의 내가 계속 바라던
이상적인 영웅 그 자체였기에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 어떤 시련들이 나의 앞에 닥쳐와도
혼자서 극복해낼 수 있는
그런 영웅이 되고 싶었어
무채색에 칙칙하더라도 괜찮아
누군가 이상한 시선을 비춰오더라도
나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
되고 싶었어
되고 싶었어
되고 싶었어
사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내민 손을 잡는 게 두려웠을 뿐이란 걸
하지만 그걸 인정했다간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봐
누군가 내게 말한 적이 있었던가
완벽하고 고독한 영웅 따위는 없다고
그건 그저 네가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무채색의 영웅만을 쫓고 있었던
소년은 무채색도 영웅도 되지 못한 채
헤매이며 주저앉은 채로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어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던 순간 다시 내밀어온 너의 손길에
그 손을 잡는 걸 두려워했던
소년은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와
함께 다시 일어서고 싶다, 생각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