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이라는 건 정말 숭고한 일이야.”
식전주 한 잔에 벌써 취했군요.
붉게 달아오른 뺨을 감싸 쥔 채
양이 눈을 끔벅입니다.
“털 깎는 일에 무슨 숭고씩이나.”
어라, 생각이 말로 튀어나와 버렸습니다.
“털이 아니라 가장자리!”
정색을 하고 눈을 부릅뜨는 모습에
저는 입을 다뭅니다. 술에 취한 사람,
아니 술에 취한 양은 상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나는 가장자리를 손질하는
디자이너라고!”
양이 자르는 것은 단순한 머리카락이
아닙니다. 녀석은 사람들이 지우고
싶어 하는 불쾌한 실수, 부끄러웠던 기억,
괴로운 추억들을
머리카락을 빌어 잘라냅니다.
잘 자른 기억들은 병에 담아 보관하는데,
벌써 사람들의 기억으로
가득 찬 녀석의 컨테이너가
지구 곳곳에 셀 수도 없이 많죠.
그게 숭고한 일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직업에 대해 평가를
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죠.
“기억을 자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
“많지. 그리고 단순히 자르기만
하는 게 아니야. 다른 색을 입히고
싶어 하는 손님들에게는 원하는
기억으로 염색을 해주기도 하고,
붙임 머리로 추억을 증폭시켜
줄 수도 있지. 흐렸던 기억을
되찾고 나면 저런 좋은
작품을 쓸 수도 있단 말이야.”
녀석은 손가락으로 선반 위의
책을 가리킵니다.
<양을 구하는 다섯 가지 방법>.
“저건 우리 단골이 붙임머리
시술을 받고 60년 전에 했던 기억을
생생하게 되새겨서 쓴 글이야. 명작이지.
70대 노인이지만 마치
10대 소녀가 쓴 것 같은 순수함이
담겨 있다고 비평가들이 죄다
칭찬을 했다구. 사실은 60년 전의
기억을 붙이고 쓴 글이라 10대 소녀가
쓴 게 맞는데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술가의
뮤즈라고도 할 수 있지.”
키득티득 웃는 녀석에게
첫 번째 요리를 내어놓습니다.
엉망진창처럼 보이는 건 모두
의도된 플레이팅이죠.
“그럼, 예술가의 뮤즈로서
열린 마음으로 한 번 먹어봐.”
“상당히 실험적인 비주얼인데?”
“예술가의 뮤즈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
떨떠름한 표정을 한 녀석이
샐러드를 포크로 한 입 짚습니다.
그리고 입안에 넣는 순간.
“으퉤퉤웨!!”
도로 뱉어내는군요.
“실패인가.”
“신종 암살 수단이야?”
“영 아닌가 보군.”
“먹어 본 음식 중에 최악이야.
아니 음식이라고 부르는 것도 불쾌해.”
“예술을 이해 못 하는군.”
미리 테스트해 보길 잘했군요.
그나저나, 남은 식재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눈이 찢어질 듯
째려보는 녀석의 시선을 받으며
잠시 고민에 잠깁니다.
“그게 좋겠다.”
적당한 메뉴가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