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어사또 내려오시다 방자 허는 소리를 들으시고,
“저놈이 내 앞에서 수 년 거행허던 방자 놈이 분명한데 저놈의 천성이 방정 맞은 놈인지라 내 본색을 알게 되면 누설이 될 것이니 잠시 속일 수 밖에 없지. 이 얘! 저기 가는 놈아! 여봐라! 이 얘!”
“당신이 날 불렀소?”
“오냐 불렀다. 이리 좀 오너라”
“뭣 헐라고 불렀소?”
“너 어데 사느냐?”
“아니 바쁘게 길 가는 사람 보고 그 말 물어 볼라고 불렀소? 별 사람 다 봤네. 나 남원 사요.”
“남원 살아? 그래 어데를 가지?”
“뭣 헐라고 묻소?”
“내가 알 일이 있어 묻는다.”
“허 참, 내가 바쁜 게 얼른 가르쳐 주리다. 남원 옥중 춘향 편지 갖고 서울 삼청동 이몽룡 씨 찾어갑니다. 알었지라우? 나 가요.”
“이 얘, 이 얘, 이 얘, 게 있거라. 미안한 말이다만 한 말 더 물어보자.”
“또 뭔 말이오? 얼른 말 허시오.”
“너 가지고 가는 편지 잠깐 보여줄 수 없겠니?”
“뭣이 어쩌니? 편지요? 생긴 것은 점잖헐 것 같이 생겨갖고, 외서도 그러지 못허는디 남의 내간을 삼도 대로변에서 함부로 보자고? 예끼 손 천하!”
“너 이놈! 어른에게 아이들이 그런 말 하는게 아니다. 옛글에 하였으되 ‘부공총총설부진하여 행인임발우개봉’이라는 문자가 있느니라. 내 잠시 보고 준들 허물 되겠니?”
문자 한 마디 모르는 놈이 아는 체라고,
“아따 그 양반 채린 행색으로 봐서는 문자 속이 거드러 거렸네 그려. 그러시오. 줄 일은 아니오만 당신이 문자 쓴 값으로 주는 것인게 얼른 보고 주시오. 나 바쁘요”
어사또 편지 받어 떼어보니 틀림없는 춘향의 필적이라. 촌장이 끊어지는 듯 눈물이 앞을 가릴 제 방자 놈이 눈치챌까봐 억제허고 사연을 보니,
[편지내용(시창)]
일함정누 홍유습이요 만지춘수 묵미간을 한 봉한 전에 눈물이 붉어있고 가득한 근심 맑은 먹이 마르지 않는지라. 비두에 문안허고 열 번 남아 죽은 바에 다만 일개 혼 뿐이옵기로,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두어줄 글을 올리오니 깊이 하감 하옵소서. 작춘 이후로 수택을 뵈옵지 못 하오니 멀리 바라는 마음 갈수록 새로우며, 군자 계실 때는 술 마시고 글 지을 제 빗소리는 운이 되고 달빛은 글귀 되어 백향산의 값을 기대리옵더니, 한 번 가신 후에 잎에 맺어 듣는 비는 첩의 근심을 따라 울고, 가지 들어 비치는 달은 군자의 얼굴이 오신 듯 허옵고, 도리어 상심하여 거문고로 울음을 대허오니 육현이 끊어지고 글귀로 회포를 말아 구회가 마르나이다. 유수 같은 광음이 석화 같이 바쁘오니 아까운 청춘은 반일이 저물어 동군이 애지하사 허하지 아니시며, 뜻밖의 변이 있어 위터운 목숨이 조석을 다투오니, 확철의 마른 고기 물을 누가 대어주며 고운 꽃이 흐려진들 뉘라서 애끼리까? 어찌어찌 오실테면 다시 보지 못헐 사람, 천금 일찰로 위로하여 주시옴을 천만복망 바래내다.
[중모리]
“백운 홍수 깊은 곳에 인거인내 추천헐 제 귀중허신 도련님과 부질없이 눈이 맞어 이 지경이 웬일이오? 앗자에 따니허고 그 밑에 곳자 쓰고 손가락을 아드드드드드득 깨물어 점을 툭툭 찍었으니 아이고라는 말이로구나. 춘향아, 네가 이것이 웬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