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그때 흥보 마누라가 막내둥이를 안고 서리밖을 나서서 흥보 오는 곳을 바라보니 건넌산 비탈길에서 작지를 짚고 절뚝절뚝하고 오는 모양이 쌀과 돈을 많이 가지고 오는 듯 하거늘 흥보가 당도하니,
“여보 영감 얼마나 가져왔오 어디 좀 봅시다.”
“날 건드리지 마오.”
“아니 또 맞었구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얘기 할 테니 들어보오. 오랜만에 형님댁을 갔더니 형님 양주분이 어찌 후하던지 전곡을 많이 주시기에 짊어지고 오다가 요넘어 강정 모퉁이에서 도적놈에게 다 빼앗기고 매만 실컷 맞고왔네.”
흥보 마누래가 이 말을 듣더니 기가맥혀 한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모리)
그런대도 내가 알고 저런대도 내가 아요. 가빈에는 사현처요 국난에는 사양상이라, 형님속을 내가 알고 시숙님속 내가 아요 내가 얼마나 우준하면 중한 가장 못먹이고 어린자식을 벗기겠오. 모질고도 독한양반 구상같이 썩을 목숨 누구 줄라고 아끼었소. 동기간도 불고허고 이리 몹시 쳐서 보냈는고. 차라리 내가 죽을라요. 밖으로 우루루루루 뛰어나가 서까래에 목을 매고 죽기로만 작정을 허니 흥보가 달려들어 아이구 여보 마누라. 마누라가 이게 웬일이요. 마누라가 죽고 내가 살면 어린 자식들은 어이 헐거나 차라리 내가 죽을라네. 둘이 서로 부여안고 방성통곡으로 울음을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