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시인: 이유경)

한경애

♣ 나  목

- 이 유경  시

나목가지 속으로 시간이 몰입돼 간다
잔잔한 바람에도 뿌리째 뽑히는 그것은 내가 의식 못하는
내 자아다
가지에서 뿌리로 흐르는 목덜미에서 항문으로 빠지는
시간의 톱날에 내 자아는 해체 된다
문득 그 가지를 꺾어 보았는가. 거기에 넘치던 수액을
비쳐 보다가 응결하는 자아의 아픔을 반화하면서
생명의 잔인함을 체험 한다
<다 계절 탓이지>

살아있는 아무도 없는 비탈에 눈이 쌓이고 발목이 잠기고
시간이 가지에서 빠져나와 하얀 눈이 되어 기침한다.
춥고 배고픈 나목의 말단에서 바람이 걸인처럼 서성댄다.
내 자아는 자꾸 피를 머금고 죽음의 비탈은 살아 있는
이층 슬라브 위로 쏟아진다.
<다 계절 탓이지>

나목이 살해 되었다
수채화 속에서가 아니다. 스팀이 있는
빌딩에서 내려다 본 한 길에서 연탄가스에 질식 되었다
피에 젖은 자아 위로 시간의 톱날이 쓸며 가고
세찬 바람이 텅 빈 가지를 접수한다.
쓰러진 나목 곁에 나 혼자 서 있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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