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하도 걷다 보니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인지,
나가는 길인지도 알 수 없는 길을
그저 걷게 되었어. 걷다가 보니
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이 나오지 뭐야.
'사람이 사는 집인가......?'
아들은 초가집 가까이 다가갔어.
"계십니까?"
바로 그때였어.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한 아가씨가 나왔어.
"인적 드문 이곳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핏기 없이 하얀 얼굴과
앙상한 손가락이 으스스했지만,
아들은 꾹 참고 말을 했어.
"실례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모으러 다니던 중,
길을 잃어 이곳까지 왔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묵어갈 수 있는지요."
"들어오시지요."
힘이 없어 높낮이마저 없는 목소리로
아가씨가 답했어.
아가씨는 불이 컴컴한 쪽방으로 안내했어.
"보시다시피 저희 집도 형편이 좋지 않아
남은 곳이라고는 불도 들지 않는
작은 방 하나뿐입니다.
대접해 드릴 음식조차 없어
송구할 따름입니다."
기운 없이 말하는 아가씨를 보고
아들은 봇짐을 뒤적여 남겨둔
육포 조각을 하나 꺼내주었어.
"가진 것이라고는 이것뿐입니다.
하룻밤 묵어가는 값이라 여겨주십시오."
아가씨는 예의를 차릴 새도 없이
육포 조각을 낚아채어
허겁지겁 뜯어먹기 시작했지.
아들은 몹시 당황했지만,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우물이 보였어.
아들은 그곳으로 가서 물을 길어
표주박에 따라 아가씨에게 내밀었어.
"천천히 드십시오."
정신없이 육포를 먹고 물을 마신
아가씨는 이내 부끄러워졌어.
"송구합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그만......"
그리고 아가씨의 이야기가 시작됐어.
"소녀의 이름은 허가 선영이라 하옵니다.
원래 저와 어머니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와 장을 다녀오는 길에
덩치가 커다란 거인을 만났지요.
어머니는 저더러 나무 뒤로 숨으라 하시고
일부러 눈에 띄는 쪽으로 달려가셨습니다.
그리고 거인이 어머니를 따라간 후로
저는 어머니를 뵙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어머니가 근처를
헤매고 계시면 만날까 싶어서
이 산속에 들어와서 지내고 있습니다.
시일이 길어지다 보니
아무것도 먹지를 못해서
굶어 죽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그 거인에게 잡혀가신 듯합니다!
마침 그 거인을 쫓던 중이었으니
제가 가서 낭자의 어머니도 계신 지
살펴보겠습니다."
아가씨는 눈물을 흘렸어.
"감사합니다. 혹시 찾으시는
재료가 무엇인지요?"
"벼룩 한 말, 빈대 한 말, 바늘 한 쌈이
필요합니다."
아가씨가 무릎을 치며 말했어.
"그거라면 이곳에 모두 있습니다.
헛간에 벼룩과 빈대가 넘쳐나니
잡으면 될 것이고,
바늘은 제가 이곳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있습니다."
"바늘을요?"
"예, 소녀는 어머니와
삯바느질을 해왔기 때문에
항상 바늘을 넉넉히 지니고 다닙니다."
그래서 아들과 아가씨는
날이 밝는 데로 헛간에서 벼룩과 빈대를
잡기로 했어.
아들이 머물게 된 작은 쪽방은
불도 들지 않아 어둡고 추웠지만
아들은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분 좋게 잠이 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