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섬뜩한 날
건조한 공기
큰 소리를 내기가 꺼려지는 날
검빛을 띈 도로 위 주눅 든 잡초 속
그게 나의 보금자리오
볕 드는 쪽에서
박 터지게 싸워대다
미처 생각 못 해 즈려밟힌 것들
묵묵히 주워 담고 꿰매다 보면
줄줄이 완성된다오
난 거미
거미줄은 회색을 갖고
흘러갈 시간은 양분이 되어서
부서지는 흑백의 잔해로
지금을 쓸 뿐이라오
한 번은 질문받지
결국 너흰
어디라도 끼길 망설이는 겁쟁이였냐고
딱히 틀린 점도 없는 듯해
침묵을 지켜주었소
단지 세월이 조금
지나고 나면
반대로 당신에게 묻고 싶소
실천하는 총과 칼, 눈 가린 저울질로
얻은 승리에 흡족하냐고
난 거미
거미줄은 회색을 갖고
흘러갈 시간은 양분이 되어서
부서지는 흑백의 잔해로
지금을 쓸 뿐이라오
당신은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되었는가?
사람답지 못해 사람다운 일을 행할 준비가 되었는가?
모호한 경계에 엎드려 실만 짜기엔
몸이 근질거리는가?
뜻대로 하라
뜻대로 하라
다만,
기억의 몫은 뒤로 남겨주어라
늘 그래왔듯이
난 거미
거미줄은 회색을 갖고
흘러갈 시간은 양분이 되어서
부서지는 흑백의 잔해로
지금을 쓸 뿐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