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 자
-김종문 시
내가 서양 문명의 혜택을 입었다면
그것은 단 한 가지, 의자이다
그렇지만 나의 의자는
바로크 풍이나 로마네스크 풍과는 거리가 멀고
더욱이 대감들이 즐기던 교의 따위도 아니다
나의 의자는 강원도산 박달나무로
튼튼한 네 다리와 두터운 엉덩판과 가파른 등이
나의 계산에 의해 손수 만들어졌고
칠이라고는 나의 손때 뿐이다
나의 의자는
나의 무게를 저울보다도 잘 알고 있고
나의 동작 하나 하나에 대해 민감하며
나의 거칠어지는 피부를 어루만질 줄 안다
나의 고독은 나의 의자와의 교감이기에 고독이 아니고
나의 독백은 나의 의자와의 대화이기에 독백이 아니다.
낮을 밤에 이어 시를 쓰노라면
나의 의자에서 시가 우러나며
나의다리, 나의 엉덩판, 나의 등이 되어
때로는 지하 8 척 아래로, 때로는 구중의 탑 위로
나를 운반하지만
나의 의자는 항시 제자리에 있다.
나의 의자는 세계의 축(軸), 나의 만세반석이다
세상에는 빈 것이 하도 많지만
나의 의자는
비록 공석 중이라도 비어 있지 않다.
★*…자아를 잃은 무분별한 식민 모방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이 형식을 의미하는 의자와 자신과의 관계에서 잘 나타나있다. 나의 의자를 강원도산 박달나무로 만들었다는 대목에서는 전통문화에 대한 작가의 확고한 주체의식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