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시 사랑가로 세월을 보낼 적에, 호사다마라, 뜻밖에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하야 내직으로 올라가시게 되었구나. 도련님이 부친따라 아니갈 수 없어 하릴없이 춘향 집으로 이별차 나가시는디,
점잖허신 도련님이 대로변으로 나가면서 울음 울 리 없지마는, 춘향과 이별헐 일을 생각허니 어안이 벙벙, 흉중이 답답허여, 하염없는 설움이 간장에서 솟아난다. 두고갈까? 다려갈까? 하 서러히 울어볼까. 저를 다려 가자 허니 부모님이 꾸중이요, 저를 두고 가자 허니 그 마음 그 처사에 응당 자결을 헐 것이니, 사세가 난처로구나.” 길 걷는 줄을 모르고 춘향 문전을 당도허니
그 때여 향단이 요염섬섬 화계상에 봉선화에 물을 주다, 도련님을 얼른 보고 깜짝 반겨 일어서며, “도련님, 이제 오시니까? 전에는 오실라면 담 밑에 예리성과 문에 들어 기침 소리, 오시난 줄을 알겄더니, 오날은 뉘기를 놀래시랴고 가만가만 오시니까?” 그 때여 춘향 모친, 도련님 드릴랴고 밤참을 장만허다 도련님을 얼른 보고 손뼉 치고 나오면서, “허허, 우리 사위 오시네. 남도 사위가 이리 어여쁜가? 밤마다 보건마는 낮에 못 보아 한이로세. 아자제가 형제분만 되면 데릴사위 내가 꼭 정하제, 한 분 되니 헐 수 있소?” 도련님 아무 대답 없이 방문 열고 들어서니, 그 때여 춘향이는 도련님을 드릴랴고 금낭에 수를 놓다, 단순호치 반개허여 방긋 웃고 일어서며 옥수 잡고 허는 말이, “수색이 만면허니 이게 웬일이오? 편지 일 장 없었으니 방자가 병들었소? 어데서 손님 왔소? 벌써 괴로워 이러시오? 사또께 꾸중을 들으셨소? 누가 내 집에 다니신다 해담을 들으셨소? 약주를 과음허여 정신이 혼미헌가?” 뒤로 돌아가 겨드랑에 손을 대고 꼭꼭꼭 찔러 보아도 몸도 꼼짝 아니 허네,
춘향이가 무색허여 뒤로 물러 나앉으며, “내 몰랐소, 내 몰랐소, 도련님 속 내 몰랐소. 도련님은 양반이요, 춘향 저는 천인이라, 잠깐 좌정허였다가 버리는 게 옳다 허고 나를 떼랴고 허시는디, 속 모르는 이 계집은 늦게 오네, 편지 없네, 짝사랑 외즐검이 오직 보기가 싫었겄소. 듣기 싫어하는 말은 더 하여도 쓸데가 없고, 보기 싫어하는 얼굴 더 보아도 병 되나니, 나는 건넌방 어머니으게 가지.” 바드드득 일어서니 도련님 기가 맥혀 가는 춘향을 부여잡고, “게 앉거라. 게 앉거라. 네가 미리 속을 찌르기로 내가 미처 말을 못허였다. 속 모르면 말을 마라.”
“속 모르면 말 말라니 그 속이 참 속이오, 꿈 속이오? 말을 허오, 말을 허오. 답답허여 못 살겄소.”
“이애 춘향아,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하야 내직으로 올라가시게 되었구나.” “아이고. 도련님 댁에는 경사 났소그리여.”
“옳제, 인제 내 알었소. 도련님 한양을 가시면, 내 아니 갈까 염려시오? 여필종부라 하였으니, 천 리 만 리라도 도련님을 따라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