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리고 있었네
두 눈을 감고 어둠을 안은 채
사방이 캄캄하다는 건
싫지는 않았지
내버려 뒀네
그 어떤 미동도 않은 채
난 잔뜩 웅크리고 있었네
두 귀를 막고서 침묵을 품에 안은 채
어색할 것 같던 정적도
싫지는 않았지
내버려 뒀네
그 어떤 미동도 않은 채
이따금씩 손끝에 전해져오는
이름 모를 감각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포근했던 것 같아
아주 따뜻하면서도 깊은
바다나 강 같은 그런 느낌
유난히 길었던 지난 겨울
난 아주 오랫동안 겨울잠을 잔 듯해
더는 잠겨있을 수 없기에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내 두 발을 계속해 찬 끝에
조금씩이나마 움직일 수 있게 됐지
뭐랄까 이로써 난 나의 첫발을 뗐지
이 세상은 무거워진 내 머리를
자꾸만 밑으로 잡아당겨
나에게 준비하라는 듯 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온몸에 피가 도는 게 느껴져
그래 내 온몸에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검붉은 핏줄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날 보며 손짓하는 불빛을
이내 곧 가슴이 뛰어
박동질하는 내 심장
그 천둥 같은 소리에 절로 깨어진 잠
분명 어제까진 죽어있었던 내가
다시금 힘겹게 꺼내어 놓고는
손에 쥔 삶
절대 놓치지 않겠어 다시는
적어도 차가운 흙더미 속에
내가 묻히기 전까지는
서서히 바빠지는 머릿속
하지만 이제 와서는 멈출 수도 없네
깨닫길 원해
내가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서
또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것들에
대해서
보이지도 않는 너무나 작은 점일
때부터 생겨난
내 존재에 대한 의문들
지독하리만치 붙어 다니며
날 괴롭혀온 복잡한 생각들
그래도 지켜온 단 한 가지의 믿음은
난 선택받았다는 것
그 누구도 말해준 적은 없지만
알고 있었지 이것 하나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내 가슴팍 위에다
새겼어
그 무엇도 집어 들 힘이 없어서
내 생각이 곧 펜이자
내 가슴팍이 곧 공책이었어
이제 시간이 된 것 같아
날 기다리는 모두에게로
이윽고 문이 열리고
날 둘러싼 수많은 시선과 함께
눈부신 빛이 보여
I'm Born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