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 처럼
살아가는 것은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旗)를 꽂고 산들 무얼 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은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 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
언뜻 만나서 스쳐가는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담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지는 별의 이야기도 아닌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 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