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밤거리 십자가를 보며
내게 말했지
이 세상에 종교가 있는 한
구원은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죽음 앞에서
평등하기에
너의 마음은 편하다고
누가 가족 얘기를 물으면
너는 말했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검둥이였다고
너의 마음은 외국인처럼
멀리 있기에
아무런 상관 없다고
아무 상관 없다고
회색 빛 하늘에
길 잃은 새처럼
너의 영혼은 한없이 혼자였고
어두운 심연 속의 물고기처럼
너의 피부는 한 없이 단단했어
누가 나에게 너를 물으면
나는 말할래
아무런 기억 없다고
아무 기억도 없다고
너는 헤어진 지도를 보며
내게 말했지
이 세상에 국경이 있는 한
해방은 없다고
하지만 흐르는 시간마저도
끝이 있기에
너의 기분은 좋다고
너는 도시의 야경을 보며
내게 말했지
이 세상에 소유가 있는 한
혁명은 없다고
하지만 너는 더 이상 세상에
미련 없기에
아무런 관심 없다고
아무 관심 없다고
새까만 겨울 날 비둘기 눈처럼
너의 눈빛은 한 없이 공허했고
어두운 밤을 가르는 번개처럼
너의 표정엔 항상 금 가 있었어
누가 나에게 너를 물으면
나는 말할래
아무런 기억 없다고
아무 기억도 없다고
아무런 기억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