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츄르를 가방에 모두 담은 인간이 힘없이 말했어요.
“인정하죠. 나는 저 고양이가 필요해요.”
당연하죠.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
있을 리가요. 이렇게 따뜻하고
보송한 털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은 조금 초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말해요.
“필요한 걸 교환하는 게
가족이라면 더더욱…
나는 너에게 줄 게 없어.”
나는 일단 눈에 힘을 줘요.
무슨 말일까요?
대답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대장이 끼어들어요.
“집이 있지 않습니까.”
인간은 쓴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요.
“이 앤 할머니와 살았어요.
반지하 방이었지만 매일
따뜻한 음식 냄새가 나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죠.
오늘 여기를 찾아온 것처럼 전
종종 이끌리듯이 그 창문 앞으로 갔어요.
온갖 다정한 냄새들이 뒤섞인
그 집 앞에서 한참 있다 가곤 했죠.”
“신고를 당하지는 않았습니까?”
“하하, 모두 잠든 시간이었으니까요.
깨어 있는 건 이 애와 나뿐이었어요.”
몰랐어요. 인간이 왜 찾아오는지까지는.
그냥 창문 틈으로 주둥이를 내밀어
먹는 츄르가 달콤했고,
빨간 구두는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으니까,
달리 궁금할 것도 없었죠.
“이 애는 할 수 있겠죠.
누군가의 가족이 되는 것.”
자기는 할 수 없단 뜻일까요?
“집이 있다고 해도 츄르밖에
가진 것이 없는데,
뭘 해줄 수 있겠어요, 제가.”
츄르라면 충분하지 않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인간에게 질 수는 없었으므로
꾹 다문 입에 힘을 줬어요.
“한눈에 알 수 있어요.
나눠 줄 따뜻한 털이 있고,
어리지만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다시 가족이 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런가? 그럴까요? 뭐, 전…
확실히 귀여우니까요.
“하지만 전 나눠줄 게 없죠.
따뜻함도 사랑도.
그러니까 필요하다고
가족이 되자는 말 같은 건,
할 수 없어요.”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 없단 거군요.
역시 인간들은 말을 좀
이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인간에게 다가가 나는 소리를 높였어요.
“세 번의 기회를 주겠어요!”
손을 뻗어 인간의 가방을 똑-
하고 열었어요. 대체 츄르가
몇 개나 있는 걸까요?
나는 가방 속에서
츄르 하나를 꺼내 들었어요.
대장과 인간이 동시에
나를 보고 있네요. 나는 여태까지
일하며 배운 모든 노하우를 동원해
대장처럼 말하기 시작해요.
“이를테면 여긴 숲이라고 생각하세요.
인간은 고등어.
물론 인간은 고등어가 아니지만,
그렇게 치자는 거예요.
숲고등어는 비리지도 않으니까
인간이랑 완전히 다르지도 않잖아요.
무튼 고등어가 줄 게 있어서
숲으로 가는 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예요.
나는 아주 관대한 고양이라서,
당신이 츄르 밖에 줄 수 없다고 해도
아주 약간의 불평 정도로
용서해줄 거예요.”
하지만 난 그렇게 간단한
고양이가 아니니까, 단번에
인간의 가족이 되어주겠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죠.
“세 번. 앞으로 세 번 더
이 가게를 찾아오는 거예요.
그리고 특별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뭐 적당히 가족이 되는 것도
고려해보도록 하죠.”
‘결격사유’라던가 ‘고려’라는
단어 같은 건 대장한테 배운 거예요.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몰랐는데,
역시 기억해두길 잘했어요.
“그렇다는데 말입니다.”
대장이 덧붙여요.
인간은 이 상황이
난감하다는 표정이에요.
“그 표정은 감점 사유예요. 말했죠?
당신에게 거절할 권리는 없어요!”
날카로운 내 말에 인간은
얼른 표정을 바꿨어요.
좋네요, 아까보다.
솔직하게 기대감을 품은 얼굴.
“난 할머니처럼 맛있는
생선을 구워줄 수도 없고…,
오후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데.”
바보 같은 소리예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하는데,
난 할머니가 고등어를 구워줘서
곁에 있었던 게 아니에요.
난 말이죠. 할머니가 종일
박스를 모으러 돌아다니는 동안,
낡은 담요에서도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던 우아한 고양이라고요.”
인간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요.
“볼품없는 사료에도
불평 않는 아주 고상한 고양이고요.”
난 다시 덧붙였죠.
“하지만 섣불리 이걸
승낙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난 말이죠. 아주 특별한 고양이니까.”
피를 나누어야만 가족이라고 한다면,
나와 할머니도 가족은 아니었던 걸요.
할머니에겐 내 따뜻한 털이,
나는 할머니의 냄새가 가득 배어있던
다정한 그 공간이 필요했던 것뿐이에요.
서로를 해치지 않는
그 다정함들을 사랑했을 뿐.
사랑?
아- 사랑이라는 생각은 처음 해봤어요.
그래요. 그건 사랑이었네요.
그런 걸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나는 가족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세 번…이라고 했니?”
인간이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나는 그저 고개를 조금 끄떡였어요.
인간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어요.
조금 더 생각하면 그냥 가게에서
내쫓아 버려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대장이 인간에게 걸어가
뭔가 잔뜩 들어있는 종이박스를
안겨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