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동방이 점점 밝아지니, 눈물 씻고 밥을 지어,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 진지 잡수시오.” “원, 이 자식아 오늘 아직 밥은 별로 일쿠나.” 부녀천륜이라 어찌 몽조가 없을 소냐.“여봐라 청아, 간밤에 내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가 꿈을 꾸니 니가 수레를 타고 갓없는 바다를 한없이 가보이드구나. 그래 내가 뛰고, 궁굴고, 울고 야단을 했지. 소스라쳐 잠을 깨어 내 손수 해몽을 해봤지야. 꿈에 수레라 허는 것이 생시에 가마 탈 꿈이요, 또한 꿈에 눈물이라는 건 생시에 술이란 말이다. 그러니 오늘 승상댁에 가서 술에다 밥에다 잘 묵을 꿈 아니냐”. 심청은 저 죽을 꿈인 줄 알지마는, “아버지 그 꿈 장히 좋습니다.” “좋고 말고야. 그런디, 청아. 여, 오늘 아직 반찬이 매우 좋구나. 누 집이 제사 모셨드냐?” 반찬도 띠어놓고, “아버지, 많이 진지 잡수시오.” “오냐, 오냐, 내가 언제는 많이 안 먹디야? 그런디, 어라 어라, 상 물려라, 오날 승상댁에 가면은 잘 묵을 텐디, 지금 딸 다려 온다고 산적 지지고 볶으고, 야단났을 것이다. 어서 상 물려라.” 심청이 하릴없이 진지 상 물리치고 사당에 하직허고, 이제는 아무리 생각허여도 부친을 더 속일 수 없는지라.
[자진모리]
심청이 거동 보소. 부친 앞으로 우루루루루루루 “아이고 아부지”. 한번 부르더니 말 못허고 기절헌다. 심봉사 깜짝 놀래 “에이? 아가 이게 웬 일이냐 에이? 얘가 오늘 아직 반찬이 좋더니 뭘 먹고 체했느냐. 정신 차려라. 아가. 아니 어떤 놈이 봉사의 딸이라고 정개 허더냐. 말 하여라, 답답허다 말 하여라.” “아이고 아버지.” “오야” “공양미 삼백 석을 뉘가 저를 주오리까. 남경장사 선인들께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오날이 행선날이오니 저를 망종 보옵소서. 어느 때나 뵈오리까.” 심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어쩔 줄을 모르는구나, “뭣이 어째? 아니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오날 죽으로 가는 날이여? 에이?”.
[자진중중모리]
“허허 이게 웬말이냐? 이것이 웬말이여? 애비 보고 묻도 않고 니 맘대로 허단 말가. 못 허지야, 못 해여, 눈을 팔아 너를 살데, 너를 팔아 눈을 뜨면 뉘를 보랴 눈을 떠야. 철 모르는 이 자식아 애비설음 니 들어라. 너의 모친 너 낳고 칠일안의 죽은 후어 앞 못보는 늙은 애비가 품안에다 너를 안고 이집 저집 다니며 동냥젖 얻어 멕여 게우게우 길러내어 이 만끔이나 장성. 묵은 근심 햇근심을 널로 허여 잊었더니 이것이 웬일이여?”. 발써 선인들은 문전에 들어서 “심낭자 물 때 늦어가오”. 성화같이 재촉허니 심봉사 이 말을 듣고 밖으로 우루루루루루루루루 “에이 무지한 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 사다 제 지낸디 어디서 보았느냐? 옛말을 못 들었나? 칠년대한 가물 적의 사람 잡아 빌랴허니 탕임금 어진 마음 전조단발 신영백모 상림뜰에 빌었더니 대우방수천리나 풍년이 들었단다. 사람 잡아 빌 양이면 내 몸으로 대신 가마. 돈도 싫고 쌀도 싫고 눈 뜨기도 내사 싫다”. 가삼 쾅쾅 뛰다려, 목제비질을 덜컥, 내리둥굴 치둥굴며 죽기로만 작정 허는구나.
[아니리]
이렇듯 야단이 났는디, 그때여 무릉촌 승상부인이 이제야 그 소문을 들으시고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구나. 심청이 부친전 여짜오되, “아버지.” “오야.” “무릉촌 승상부인이 저를 다녀가라 하옵시니 어찌하오리까.” “아이고 그 댁에는 열번이라도 다녀오고 백번이라도 다녀오너라.”
[진양조]
시비 따라 건너간다. 신세자탄 우는 말이, “아이고 내 일이야. 어떤 사람 팔자 좋아 양친이 구존허여 복록을 누리며 부귀영화로 잘 사는디, 내 신세는 어이허여 이 지경이 웬일인고?” 그렁저렁 길을 걸어 승상댁 당도허니, 부인이 반기허여 심청 손을 부여잡고 “예기, 천하 무정한 사람아. 나는 너를 딸로 여기난디, 너는 나를 속였느냐! 너의 효성은 장커니와, 앞 못 보신 너의 부친을 뉘게 의탁 허랴느냐? 공양미 삼 백석을 내가 내어 줄 것이니, 선인들과 해약하라.” 심청이 여짜오되. “당초 한번 언약 헌 걸 이제 와서 두말 허면 선인들도 낭패옵고 무공한 많은 재물 지가 어이 받으리까. 이제 후회 하릴없소.” 부인이 심청의 기색을 보고 다시 권치 못 허시고. “네 진정 그럴진대 너의 화상이나 그려두고 널 본 듯이 보겠노라.” 화공을 급히 불러 “네 여봐라, 심낭자 삼긴 형용, 수심계워 앉은 모냥 낱낱이 잘 그리면 중상을 줄 것이니, 착실히 잘 그려라.” 화공이 분부 듣고, 오색단청을 풀어놓고 심청 얼굴을 요만허고 보더니, 화용월태 고운 얼굴 모란화 한 송이가 세우중으 젖은 듯이, 난초같이 푸른 머리 두 귀 밑에 땋인 것과, 녹의홍상 이쁜 태도 역력히 그려내어, 족자 떨어 걸어 놓으니 심청이가 둘이로구나. 부인이 손수 화제를 쓰시난디 ‘생지사지일몽간의 권정하필누삼삼고 세간최유단장처는 초록강남인미환이라. 부인이 심청을 부여안고, “이제가면 언제나 볼거나 오만 날이나 일러주오.”
[아니리]
심청이 일어서며, “물때가 늦어가니 어서 건너 가것네다. 하릴없이 작별허고 심청이 집으로 돌아오니, 부친은 뛰고 이런 야단이 없제. 선인들이 이 정상을 가긍히 여겨 백미 백석, 마포 백목 각 한 동씩 내어놓고 심봉사 평생 먹고 입을 것을 동중에 의탁해놓고 떠나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