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치 올라선데

조상현

어사또: (진양조) 박석치 올라서서 좌우 산천을 둘러보니,산도 옛 보든 산이요, 물도 옛 보든 녹수로구나. 대박국으 놀든 데가 동향물색이 더욱 좋다. 전도유랑금우래 현도관이 여기련만, 하향도리 좋은 구경, 반악이 두번 왔네. 광한루야 잘 있으며 오작교도 무사트냐? 광한루 높은 난간 풍월 짓든 곳이로구나. 화림으 저 건네는 추천 미색이 어데를 갔느냐? 나삼을 부여잡고 누수 작별이 몇해나 되며, 영주각으 섰난 데는 불개청음허여 있고, 춤추는 호접들은 가는 봄비츠을 애끼난듯, 벗 부르는 저 꾀꼬리는 객으 수심을 자어낸다. 황혼을 숭시하여 춘향 문전을 당도허니, 행랑은 찌그러지고 몸채만 남었는듸, 대문은, 내 손으로 써붙인 부벽서, 충성 ‘충’자를 붙였더니 가운데 ‘종’자는 바람에 떨어지고 마음 ‘심’자만 뚜렷이 남었구나.
도  창: (아니리) 이때의 어사또, 문전에 응시하여 가만히 그 안을 살펴보니
도  창: (진양조) 후원의 울음소리 은은히 들리거늘 그곳을 가만히 살펴보니 그때의 춘향모친은 후원에 단을 붓고, 북두칠성 공야하며 촛불을 도도키고 정화수를 떠 받쳐놓고 지성으로 축수를 허는구나
춘향모: (진양조)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전 비나이다. 천지지신 일월성신 화우동심 하옵시오. 올라가신 구관자제 이몽룡씨 전라감사나 전라어사로나 양단간에 쉬이 시켜, 내딸 춘향 살려주오. 향단아, 단상의 물 갈아라 지성신공도 오늘밖에는 다시없구나.
도  창: (진양조) 향단이도 서러워 갈고 정화수여 받쳐놓고 그 자리 퍼썩 주저 앉더니 마는
향  단: (진양조) 아이고 하나님 명월이 감동하자 옥중아씨를 살려를 주오
도  창: (아니리) 어사또 문전에서 이 거동을 보시고
어사또: (아니리) 내가 선영덕으로 어사인줄 알았더니 여기와서 보니 우리 장모와 우리 향단이 비는덕이 절반도 더 되는구나. 그러나 내가 이모양 이꼴로 들어갔다가는 저 늙은이 성질에 상투쌈을 당할 테니 내가 여기서 술취한 사람 모양으로 거늘거리고 불러보는 수밖에. 게 아무도 없느냐. 이리오너라, 이리오너라, 이리와.
향  단: (아니리) 아고 마나님 밖에서 어떤 걸인이 찾나보오
춘향모: (아니리) 걸인이 찾어
춘향모: (잦은 중몰이) 허허, 저 걸인아. 물색 모르는 저 걸인. 알심없는 저 걸인. 남원 중으 성안성외 나으 소문을 못 들었나? 내 신수 불길하야 내 딸 어린 춘향이 무남독녀 딸 하나를 옥중으 굳이 갇혀 명재경각 되였는듸, 동냥은 무슨 동냥? 눈치없고 알심없고 속없는 저 걸인. 동냥없네, 어서가소.
어사또: (잦은 중몰이) 오허 늙은이 망령이여 동냥은 못 주나마 박작조차 깨란 격으로 구박 출문이 웬일? 경세우경년하니 자네 본지가 오래시. 세거인두백허여 백발이 모도 판연히 되니 자네 일이 모도 말 아니여. 내가 왔네. 어어, 자네가 나를 몰라.
춘향모: (잦은 중몰이) 나라니 누구여?  나라니 누군가. 해는 저물어지고 성부지 명부지헌듸 내가 자네를 어찌 알어?
어사또: (잦은 중몰이) 허허, 늙은이, 망령이요. 어허 늙은이가 날 몰라?  내 성이 이가라 해도 날 몰라?
춘향모: (잦은 중몰이) 이가라니 어떤 이가? 성안성외 많은 이가, 어느 이간줄 내가 알어? 자네는 성만 있고 이름은 어따가 내불고 댕긴가 에이?
어사또: (잦은 중몰이) 허허 늙은이 망령이요, 우리 장모가 망령이요, 내가 왔네여. 장모 자네가 날 몰라?
춘향모: (잦은 중몰이) 장모라니, 웬놈이냐? 남원읍내 오입쟁이들 아니꼽고 녹록드라. 내 딸 어린 춘향이가 옥중에 굳이 갇혀 명재경각이 되였어도 인사 한 마디는 아니허고, 내 집 문전을 다니면서 빙글빙글 비웃으며, 여보소, 장모. 장모라면 환장헐 줄 알고? 듣기싫네, 어서가소.
어사또: (잦은 중몰이) 허허 ?k은이 망령, 우리 장모가 망령이여. 자네가 날다려 모른다고 허니 거주 성명을 일러 줌세. 한양 삼청동사는 춘향 낭군 이몽룡, 그래도 자네가 날 몰라?
도  창: (잦은 중몰이) 춘향 모친 이 말을 듣고 우루루루루루 달려들어 어사또 목을 안고
춘향모: (잦은 중몰이) 이몽룡이라니, 아니 자네가 참으로 이몽룡인가, 에이? 어디 좀 보세
춘향모: (중중몰이) 왔구나, 우리 사위 왔네! 왔구나, 우리 사위 왔어!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속에서 쌓여 와? 춘수는 만사택이라 하더니 물이 깊어서 인제 와? 살었구나 살었구나 내 딸 춘향이가 살었구나 뉘 집이라고 아니 들어오고 문밖에 서서 주저만 허는가? 들어가세. 들어가세. 내 방으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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