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황제 반기하야 대강연유를 탐문한바, 세상의 심효제라. 궁녀로 시위허여 별궁으로 모신지라. 이튿날 조회 끝에 만조백관을 모여놓고, 간밤 꽃 봉 사연을 말씀허시니, 만조재신이 여짜오되, “국모없음을 하나님이 아옵시고, 인도하심이니, 천여불취면 반수기앙이라, 인연으로 정하소서.” 그 말이 옳다허고 그날 즉시 택일허니, 오월오일 갑자시라. 심황후 입궁후에 연년이 풍년이요, 가가호호 태평이라
[창조]
그때여 심황후는 부귀는 극진허나 다만 부친 생각 뿐이로다
[아니리]
하루는 옥난간에 비껴앉어
[진양조]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주렴 비쳐 들 제. 청천의 외기러기는 월하에 높이 떠서‘뚜루- 낄룩’ 울음을 울고 가니, 심황후 반기듣고 기러기 불러 말을 헌다. “오느냐? 저 기럭아. 소중랑 북해상에 편지 전튼 기러기냐? 도화동을 가거들랑 불쌍허신 우리 부친전으 편지 일 장 전하여라.” 편지를 쓰랴헐 제, 한 자 쓰고 눈물 짓고, 두 자 쓰고, 한 숨 쉬니 글자가 모두 수묵이 되어, 언어가 오착이로구나. 편지를 손에 들고 문을 열고 나서보니, 기럭은 간 곳 없고, 창망헌 구름 밖에 별과 달만 뚜렷이 밝었구나.
[아니리]
이때, 황제 내궁에 들어와 황후를 살펴보니, 수색이 만면하니, “무슨 근심 있나니까?”
[창조]
“솔토지민이 막비왕토라, 세상에 불쌍한 게 맹인이라, 천지일월을 못 보오니,
[아니리]
적포지한을 풀어 주심이 신첩의 원이로소이다.”황제 칭찬허시되,“국모지 덕행이요” 즉시 그날부터 맹인잔치를 여시는디, 각도 각읍으로 행관하시되, “대소 인민간에 맹인잔치 참여하게 하되, 만일 빠진 맹인이 있으면 그 고을 수령은 봉고파직 하리라.” 이렇듯 각처에 전령하여노니, 어명인지라, 지어 애기봉사까지 잔치 참여하게 되었것다.
[세마치]
그 때의 심봉사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근근도생 지내갈 제, 무릉촌 승상 부인이 심효제 효행이 감동되어 망사대 옆에다 타루비를 세웠난디, 비문에 하였으되, 지우노친 평생한허여 살신성효 행선거라. 연파만리 행심벽허니 방초연연 환불귀라. 이렇듯 비문을 허여 세워 놓니, 오고 가는 행인들이 뉘 아니 슬퍼하랴? 심봉사도 딸 생각이 나거드면 지팽막대 흩어짚고 더듬 더듬 찾어가서 비문을 안고 우드니라. 일일도 심봉사 마음이 산란허여 지팽막대 흩어 짚고, 타루비를 찾아가서, “휴우, 아이고, 내 자식아, 내가 또 왔다. 너는 내 눈을 띄라허고, 수중고혼이 되고, 나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이 지경이 웬 일이란 말이냐? 날 다려가거라. 나를 다려 가거라. 산신부락귀야 나를 잡아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찮허고 눈 뜨기도 내사 싫다.” 비문 앞에가 엎드러져서, 내려둥굴 치둥굴며 머리도 찧고, 가슴 쾅쾅, 두 발을 굴러, 남지서지를 가르치는구나.
[아니리]
황제 반기하야 대강연유를 탐문한바, 세상의 심효제라. 궁녀로 시위허여 별궁으로 모신지라. 이튿날 조회 끝에 만조백관을 모여놓고, 간밤 꽃 봉 사연을 말씀허시니, 만조재신이 여짜오되, “국모없음을 하나님이 아옵시고, 인도하심이니, 천여불취면 반수기앙이라, 인연으로 정하소서.” 그 말이 옳다허고 그날 즉시 택일허니, 오월오일 갑자시라. 심황후 입궁후에 연년이 풍년이요, 가가호호 태평이라
[창조]
그때여 심황후는 부귀는 극진허나 다만 부친 생각 뿐이로다
[아니리]
하루는 옥난간에 비껴앉어
[진양조]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주렴 비쳐 들 제. 청천의 외기러기는 월하에 높이 떠서‘뚜루- 낄룩’ 울음을 울고 가니, 심황후 반기듣고 기러기 불러 말을 헌다. “오느냐? 저 기럭아. 소중랑 북해상에 편지 전튼 기러기냐? 도화동을 가거들랑 불쌍허신 우리 부친전으 편지 일 장 전하여라.” 편지를 쓰랴헐 제, 한 자 쓰고 눈물 짓고, 두 자 쓰고, 한 숨 쉬니 글자가 모두 수묵이 되어, 언어가 오착이로구나. 편지를 손에 들고 문을 열고 나서보니, 기럭은 간 곳 없고, 창망헌 구름 밖에 별과 달만 뚜렷이 밝었구나.
[아니리]
이때, 황제 내궁에 들어와 황후를 살펴보니, 수색이 만면하니, “무슨 근심 있나니까?”
[창조]
“솔토지민이 막비왕토라, 세상에 불쌍한 게 맹인이라, 천지일월을 못 보오니,
[아니리]
적포지한을 풀어 주심이 신첩의 원이로소이다.”황제 칭찬허시되,“국모지 덕행이요” 즉시 그날부터 맹인잔치를 여시는디, 각도 각읍으로 행관하시되, “대소 인민간에 맹인잔치 참여하게 하되, 만일 빠진 맹인이 있으면 그 고을 수령은 봉고파직 하리라.” 이렇듯 각처에 전령하여노니, 어명인지라, 지어 애기봉사까지 잔치 참여하게 되었것다.
[세마치]
그 때의 심봉사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근근도생 지내갈 제, 무릉촌 승상 부인이 심효제 효행이 감동되어 망사대 옆에다 타루비를 세웠난디, 비문에 하였으되, 지우노친 평생한허여 살신성효 행선거라. 연파만리 행심벽허니 방초연연 환불귀라. 이렇듯 비문을 허여 세워 놓니, 오고 가는 행인들이 뉘 아니 슬퍼하랴? 심봉사도 딸 생각이 나거드면 지팽막대 흩어짚고 더듬 더듬 찾어가서 비문을 안고 우드니라. 일일도 심봉사 마음이 산란허여 지팽막대 흩어 짚고, 타루비를 찾아가서, “휴우, 아이고, 내 자식아, 내가 또 왔다. 너는 내 눈을 띄라허고, 수중고혼이 되고, 나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이 지경이 웬 일이란 말이냐? 날 다려가거라. 나를 다려 가거라. 산신부락귀야 나를 잡아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찮허고 눈 뜨기도 내사 싫다.” 비문 앞에가 엎드러져서, 내려둥굴 치둥굴며 머리도 찧고, 가슴 쾅쾅, 두 발을 굴러, 남지서지를 가르치는구나.